본문 바로가기
보통사람의 일기

우울증 일기 시작

by 보통사람냠냠 2021. 12. 9.
반응형

나의 우울은 언제 어디서부터 왜 시작되었을까?

사실은 무엇때문인지 언제부터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렸을 땐 그냥 어려서, 철이 없어서, 사춘기라서 내가 우울한 줄 알았다.

죽고싶다는 말도 그냥 힘들다는 말을 과격하게 극단적으로 표현하려고 떠올리는 일차원적인 철 없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고 직업도 생기고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생겨도

나는 내가 왜 사는지 모르겠고,

내일 아침 내가 눈을 뜨지 않게 된다고 해도 아무 미련이 없고, 그랬으면 좋겠고,

길을 가다 사고가 나서 내가 잘못되었으면 좋겠고,

하하호호 웃다가도 돌아서면 죽고싶다 다 놓고 싶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그런 생각을 늘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아 이건 다 그런 게 아니구나 생각되었을 때,

우울증으로 정신과를 다니면 나중에 보험도 못들고 불이익이 있을 수 있어 하면서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일을 걱정만 하던 내가, 미래가 무슨 소용이야, 당장 오늘 내가 죽을지도 모르는데. 라는 끝의 끝으로 내몰렸을 때

나는 드디어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인터넷에서 보던 우울증 자가진단 테스트 같은 걸 해보면 나는 항상 우울증 고위험자로 나오곤 했었는데,

보통의 자가진단 테스트라는 것이 그렇듯이 테스트 문장들의 답이 너무 뻔하게 보여서

'매우 그렇다.', '자주 그렇다.'라는 답을 하면 당연히 우울증이라는 결과가 나올텐데,

이게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으로 마치 재미로 하는 심리테스트처럼 그 결과들을 무시하곤 했다.

언젠가 의대생이었던,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너가 무슨 우울증이야, 진짜 우울증인 환자들은 병원에 와서 앉기만 해도 울어' 라고 했던 말이 뇌리에 남아서,

눈물이 날 감정도 남아있지 않아 어떻게 우는지도 잊어버린 나에겐

그래 나는 우울증도 아닌데 그냥 힘들다고 징징거리는 나약한 사람일 뿐이야

라며 내가 나를 또 깎아내리고 더이상 갈 곳도 없는 곳으로 몰아가게 했다.

 

병원에선 종이 몇장으로 되어있는 검사지를 받았다.

역시 결과는 우울증이라고 했다.

똑같은 결과였지만 그래도 전문가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해주는 말이라 좀 더 신빙성이 있었던건지,

아 그렇구나. 나는 우울증이구나.

드디어 인정할 수 있었고,

차라리 인정하고, 인정받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가 이상하고 나약한 게 아니라,

나는 아픈 거였어.

 

반응형

댓글